안경이 부러졌다. 두 번째다.
첨은 대학 때 심심풀이 농구하는데 껴들었다가 다른 사람과 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부러졌고 두 번째 안경은 침대위에서 책과 뒹굴다가 내가 요즘 잠버릇이 험해져서 내 등 아래에서 장렬한 전사를 했다.
눈물이 좀 났지만(그것도 이별이라고--;) 두 번째로 아작 난 안경을 물끄러미 보며
‘갔냐-_-? 바이ㅡㅡ 아씨, 귀찮아. 안경 맞추러 가야자나.’
잠들기 전에 내게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줬던, 많은 시간동안 정 들었던 거였는데..그렇게 간단히 보냈다.
참 오래도록 내 손에 익었던 메모 수첩이 물에 퐁당 떨어지는 바람에 역시 전사했다.
그 속에 있던 나의 흔적들은 기록 된 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은 시간에 가버렸다. 물에 떨어진지 한참 되도록 난 몰랐다. 그 안의 기록들은 자기 몸을 풀어서 물을 파랗게 물들이며 몽땅 익사 했다. 뻥 좀 보태서 통곡에 가까울 만큼 울었다. 거기 전화번호 주소 이런 것도 있었는데..미켈란 쉐르빌의 주소를 잃었다
내가 아주 어렸적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추운 겨울에 밖에서 놀다가 손이 꽁꽁 얼어서 완전 동태가 되어 집에 들어갔더니 서재에서 책을 보시던 아빠가 달려 나와 와이셔츠 단추를 열고 내 손을 당신 가슴 맨살에 넣고 녹여 주셨다. 얼마나 따뜻했던지..
그 그림은 액자에 넣어져서 내 머릿속 한쪽 구석방을 차지하고 영원히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아빠 가슴에 손을 넣고 언 손을 녹이는 것은 마지막이었다.
이젠 그렇게 서슴없이 내 언 손을 녹여줄,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의 맨 살을 찾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안 녹여 주면 한겨울에 느닷없이 가슴에 샥! 손을 집어넣어 볼거다. 아마 그 사람은 아빠랑 달라서 한 두 번은 애교로 봐 주겠지만 자꾸 그러면 성질 부릴지도 모른다-_-;
아무래도 내 또래는 그리 관대 하진 않을게다. 음. 관대한 남자를 찾아야지.
내가 어릴 때 유학을 떠난 후 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학기 내내 한 번도 빨지 못한 내 운동화를 아빠는 손수 깨끗하게 빨아주셨다. 현관에 앉아 운동화 끈을 꿰어 주시면서
“자, 다 됐구나. 이제 신거라” 하셨다.
무지막지하게 뛰어다니느라 냄새도 심할텐데;; 속 깔개까지 꺼내서 솔로 박박 문질러 빨아 주셨다. 운동화 끈을 꿰시는 아빠 등 뒤에 매달려서 어린 맘에 그래도 미안한지 한마디 했다.
“영국엔 운동화 빨데가 없어. 바스룸엔 물도 안 빠지고... 힝~ 아빠, 미안."
7월 1일, 엄마 생신이다. 그런데 오늘로 당겨서 엄마생일 축하로 외식을 했다. 왜냐면 난 4주 동안 잠시 한국에 왔다가 내일 다시 먼 곳으로 떠나기 때문이다.(아빠가 요리 해준다고 안 해서 진짜 다행이다ㅋㅋ)
난 엄마의 생일 선물로 원더걸스와 소녀 시대 노래, 엄마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준비해 variety show를 했다.(얍샵하게 돈 안드는 걸로ㅡㅡ 근데 모두 립싱크다ㅋㅋ)
오늘 두 분 배꼽 잡고 완전 넘어 가셨다. 아마 이게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나도 나이가 먹어 가자나-_-
(사실 아빠는 옆에서 곁다리로 관람하는데 관람료를 받아야하는 거 아닌지 무대 뒤에서(내방에서) 약간 고민했다ㅋㅋ)
아빠 생신은 내가 학기 중이라 한국에서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했다.
부모님 생신을 그냥 넘어 갈 순 없지. 아싸~절호의 찬스.
시간을 내서 웹서핑 클릭질 몇 번으로 요란하게 아빠 생신 축하를 했다.
아침 출근 시간 맞춰서 아빠 회사로 화려하고 붉은 장미꽃 바구니 배달을 시켰다. 리본엔 이렇게 써달라고 주문도 했고.
“축 생일,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당신의 미숙드림”
물론 엄마 이름은 아니다. 중년 아줌마의 걍 랜덤한 이름이다ㅋㅋ
담날 바로 아빠한테서 미국으로 전화가 왔다.
“너지? 꽃다발 보낸 사람. 지나가면 뒤에서 사람들이 수근거려 뒤꼭지가 간지러워 죽겠다! 당장 날라 와서 사람들 하나하나 붙잡고 해명을 하던지 회사에 대자보를 붙이든지해!!!!”
옴머~ 나 셤인데 가긴 어딜가나용ㅡㅡ?ㅋㅋㅋ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아끼는 아주 중요한 물건을 실수로 깨뜨렸다.
완전 쫄은 나는 덜덜 떨고 있었는데 엄마가 달려와 그러셨다.
“다친덴 없니? 괜찮아. 더 좋은 거 사지 뭐. 좋은 거 살라고 일부러 깰순 없자나?”
미국에서 homesick로 약간 우울해 있을 때 그때 일이 생각나서 엄마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때 그렇게 용서 해준 거 너무 고맙다고.
엄마의 심플한 답장은 나를 감동 시켰다.
“가족은 가족 구성원에게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단다. 특히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을 때 더욱.”
엄마의 지극정성 뒷바라지를 받은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자기 엄마 같음을 바란다면 불행 할 거 같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랑을 베풀어 준 자기 아빠 같음을 남편에게 바란다면 불행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다 아빠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맘을 가졌다는 착각에서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아마 난 조만간 어색하고 낯선 곳으로 내동댕이쳐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그랬다.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한 엄마는 땡잡았다고.
엄마는 그러신다.
“얘,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내 뼈와 살을 깎은 대가야. 아빠가 얼마나 에고이스트였는지 넌 모를 거다.”
엄마가 그러셨다.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고 그러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이라고.
무슨 말씀. 돈 주고 못 사는 게 어딨어ㅡㅡ?
그러나 내가 나이가 조금씩 먹어 가고 보니 엄마 말씀이 맞는 거 같다.
(내가 늙어 가는 중인가보다-_-;)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 비밀 통로로 많은 아름다운 사연들이 오고 갔을테니.
돈 주고 살 수 없는 많은 것들.
가격이 매겨 지는 것은 비싼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정말 비싼 것이다.
Addition:
나는 부유해지기 위해 돈 주고 살수 없는 것들을 오늘도 내 기억 속으로 부지런히 모은다.
나는 나중에 이것들을 모두 자산관리운용에 맡겨서 두고두고 부자로 살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