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꿈인 학생인데요. 유학생활 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갈증은 많아지는데 마땅히 혼자 일기 쓰거나 습작하려니 또 자꾸 안쓰게 돼요. 사실 유학생들이 느끼는 고독감, 혼란스러움 같은 것은 모두 공감할 만한 부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여기에 오늘부터 끄적여 보려고 해요. 사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더 생긴 것이라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은데, 많이 부족하지만 읽으시는 분들이 공감이 됐으면 좋겠고, 어떤 피드백이든 감사합니다!
아주 가끔씩만 느껴지곤 했던 그 서늘한 느낌은 이제 때를 가릴 것 없이 나를 덮쳐온다. 비슷한 또래의 솜털이 보송한 대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하릴없이 노트만 만지작 거리고, 부러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는 척 딴청을 부리는 내 모습이 나 조차도 애처로워, 이제는 이 감정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 아니 사실은, 무어라도 하려고 노력해보던 단계마저 이제는 지나버렸다. 그들이 내게 거리를 두는 것을 본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자초한, 철저한 인과 관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까. 시기와 질투, 그렇지만 선망과 원망을 담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나를 더욱 못참게 한다.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 나의 마음은 오롯이 내 안에만 감추어 놓으려 노력해 왔었는데, 그게 너무도 분명하게, 그들의 눈에는 선하게 보이는 것일까. 혹은 이건, 그저 지나친 자의식의 과잉인가.
금요일 저녁, 거리는 젊음으로 들끓는다.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홀짝 거리는 그네들, 신호등 옆에 서서 서로를 애타게 바라보는 연인들이, 같은 시간이 이토록 풍성하게 살아있을 수 있음을 증명하듯 내게까지 그 즐거움이 전해져온다. 그 즐거움을 굳이 정의내리자면, 내 단조로운 일상의 소비적인 여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즉흥적이고, 창의적이며, 말초적이다. 서로의 대화 속에, 오고가는 감정 속에 공유하는 추억들. 그 한가운데를 유유히 지나가면서, 애써 지지 않으려는 듯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 그 정취를 구경하면서, 나 역시 어쩌면 그 추억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것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래, 이건 착각이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물결 속 물거품 중 하나일 뿐, 물 속을 자유로이 헤엄쳐 다니는 그어떤 생명에게도 견줄 수 없다.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기 위해, 그저 내 안의 두려움과 어색한 위치에 다시금 현실을 깨닫고자 한다.
내가, 이곳에 떨어졌다. 떨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밖에는 없겠다. 외딴 섬에 불시착 한 고장난 비행기 마냥, 나는 이곳에 완전히 정착한 것도,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다. 그래도 고쳐 말하자면, 내가 결정했다. 아니, 사실은, 나는 다른 부수적인 요소들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정해진 지표와 장애물들을 나름 열심히 극복해 왔지만, 내 곁에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내가 아무도 곁에 두지 않았다. 나는 진정 노력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문을 열어 놓지 않은 채 벽만 쌓아왔고, 그 벽을 부수고 들어올 만한 호기와 패기, 그리고 그럴만한 용기와 의지가 있는 사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나는 폭력과 기적을 원하고 있다. 그게 나의 현재 문제라면 문제일까. 아니, 사실은 더 산더미같이 쌓인 문제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에, 애써 심각한 척,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까지 끌어와 어리광을 부리는 걸까.
사교적인 대화, 오늘 하루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는 듯 하다. 나의 부정적인 기운이 그에게 엄습하는 순간, 그는 달아날 것이고, 없던 핑계를 만들어 자리를 뜰 것이다. 그렇다면 너에게 반문하고 싶다. 너는 정말 나를 걱정하는 것 맞느냐고. 내가 잘 지내지 않을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서, 왜 그리 천진하게 내 안부를 묻고 다정하게 웃어주는 것이냐고. 내가 정말 너에게 마음을 터놓을 때, 너는 왜 다시 한걸음 물러서며, 왜 나의 눈과 입술이 사실은 울고 있는 것을, 내가 말하는 계획들이 사실은 나의 목적이 아닌 의무임을, 너는 왜 몰라주는 것이냐고, 되받아치는 나 자신이 사실은 너보다 더 이기적인 것이라 봐야 할까.
그래, 너에게는 어떤 의무도 없다. 너는 나를 책임져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너에게 내가 짐스럽다 한들, 너를 탓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젊다. 그래서 이럴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탓해야 하고, 나 자신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오롯이 내 살로 느끼기에는, 내가 아직 여리디 여린 이십대다. 같은 처지라고 살을 부대끼고 기대보려 해도, 너희는 정말 나와 다른 족속이라서, 그것은 그저 이질감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나는 왜 너희와 섞이지 못하는 걸까? 난 왜, 항상 걱정하고 슬퍼하며, 외로움에 지쳐야 하는 걸까? 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한때는 그것이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든 너희와 '다른' 사람일 수 밖에 없는 거니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건 내 두려움의 문제고, 내 가슴 속 깊이 가라 앉아 계속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 때문이다.
"너는 왜 사느냐고."
자꾸 물어볼 수 밖에 없는 나를 주체할 수 없다. 너는 누구를 이해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리 열심히, 사람들에게 기대었다 실망했다를 반복하면서, 실체가 없는 어떤 과학적 원리를 파헤치고,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육체를 혹사하면서도, 왜 그리 하루 하루 살아내려 노력하는 것이냐고.
네가 오늘 당장 사라져도 너를 걱정할 그 누군가가 없다는 걸 네가 더 잘 알면서도, 왜 이 삶을 놓지 못하는 것이냐고. 혹은 이 삶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노력을 할 만큼, 담대하지 못한 너 자신이 더 싫어진다는 사실이 이제는 지치지도 않느냐고.
그런 질문들을 하고 있는 내 얼굴엔, 가식적인 웃음과 의미없는 대화 밖에는 남아날 것이 없음을 이제는 알겠다. 그런데, 너는 왜 그것에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인가. 왜, 왜 너는 다른 인간에게 가엾다는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왜, 너는 그의 고통에 진심으로 같이 아파하지 못하는 것이고, 너의 삶이 생동감으로 가득차 주체할 수 없는 만큼, 내 마음에 드리운 어둠이 너무나 짙어서, 내게도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줄 순 없는 것인가. 혹은, 그래, 이것도 나의 되도 않는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