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 글에 제가 답변을 달아 봅니다. ㅎㅎ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자는 취득했습니다.
인터뷰하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지긴 하지만요. 여기 게시판 오시는 분들 위해 후기 남겨 봅니다.
제 블로그에 기록해 두려고 쓴 글이라 반말투로, 의식의 흐름따라 지루하게 가는 글이라 읽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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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인터뷰 필수 서류 다시 한번 점검.
1. 여권 - 6개월 이상 기한 남은 것으로
2. I20
3. SEVIS Payment Confirmation
4. DS160 Confirmation
5. 비자 인터뷰 수수로 납부 영수증
6. 비자 인터뷰 예약 접수증
7. 6개월 내에 찍은 비자용 사진 - DS160에 업로드 했을 때는 예외
분명 다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비자 인터뷰 예약 접수증"을 출력해 놓지 않은 것을 발견. 오 마이 갓.
필수 서류 외에 재정 보증인 서류 등 추가 준비서류에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정작 필수 서류를 빠뜨린 나.
이렇게 멍해서 공부는 어케 할꼬 자책했다.
6.14
아침 8:00
미국 대사관 도착. 여권과 비자 인터뷰 예약 접수증을 보여주고 입장.
가지고 들어가는 품목에 제한이 심한 거 알고 있으므로 아예 핸드폰에 교통카드 기능을 더한 신용카드 한 장만 끼워서 서류와 함께
투명 플라스틱 파일에 넣고 갔다.
가보니 그만 핸드폰 충전기 가져왔다가 지하철 보관소에 맞기고 오라는 소리 들은 사람도 있고, 핸폰 하나 외에 아이패드를 더 가져온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랬다.
8:30
역시 아침부터 사람이 많아서 한참 줄을 서 있는데 학생비자 인터뷰 할 사람만 따로 나오라고 했다.
DS160과 여권을 들고 가서 일괄적으로 바코드 스캔을 하고 돌려주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불안한 기운과 함께 앞으로 나가니, "DS160에 올린 비자용 사진이 최근 6개월 내에 찍은 게 아니므로" 사진을 다시 찍고 오라고며 보라색 종이를 주었다.
어그... 사실 3년 전에 받은 F2 비자 사진 남은 거 올렸으니 할 말은 없었다.
"귀차니즘+정확하지 못함"의 대가로 다시 대사관 밖을 나가서 소방서 왼쪽의 사진관에 가서 비자용 사진을 찍고 와야 했다.
사진관에 가니 아저씨가 보라색 종이만 보고도 뭐하러 왔는지 알고 알아서 앉으라고 하고 찍고 편집하고 한 큐에 하시더라...
가보니 나 같은 사람들이 몇 있어 위안...은 무슨. 쪽팔렸다.
9:30
사진을 다시 찍고 안에 들어가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사람은 더 많아지고 예전에는 의자도 있었는데 그 사이 의자도 없앴는지 계속 서서 기다리느라 발은 아프고 허리는 뻐근하다. 줄 서서 지켜보니 학생 비자 심사하시는 영사관은 두 분인데, 의외로? 주황색 종이 주는 경우는 딱 한 경우 봤다. 생각보다는 합격률이 높은 건지, 그냥 내가 지켜보는 시간이 그랬던건지는 모르겠다.
10:00 근방
떨리게도 내 차례가 왔다. 여권과 i20를 구멍 아래로 집어넣고 다른 서류는 넣어보려 했으나 너무 두꺼워서 못 넣고 그냥 가지고 있었다. 결국, 영사는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고 나도 들이밀 타이밍을 놓쳐 그 서류는 내 손에서 그대로 머물고 말았다.
영사관과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인사말이 지나간 후,
영사: (가려는 학교 이름과 과를 확인한 후) 왜 이 학교의 이 과를 가려합니까?
나 : 그 과(health/medical preparatory program)에서 선수과목을 들은 후 약대로 진학하여 팜디 학위를 가지고 귀국하려 합니다.
-> 인터넷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정보로, "귀국"에 포인트를 맞추어 대답함. 다시 돌아온다는 의지와 증거가 중요하다고
영사 : 왜 약대를 지망합니까?
나: 약학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 약사로 일했습니다.
영사: 그렇다면 왜 또 약대를 가려고 합니까?
나: 내가 가지고 있는 건 4년제 학위인데, 약학 교육 과정이 6년제로 바뀌어서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왜냐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으나 말 짜름)
영사: (남편 학교 이름을 확인한 후) 그러면 남편 학교에서 같이 하지 왜 다른 학교에 가려 합니까?
나: 남편 학교에는 health/medical preparatory program 과가 없습니다. 다만 화학과에 들어가 track 으로 선택할 수는 있는데...
(어떻게 다른가 설명하고 싶었으나 역시 말 잘림...)
영사 : 공부 기간은 얼마로 예상합니까?
나: 선수과목에 1~2년, 약대에서 3~4년 예상합니다.
영사: 남편은 언제 졸업합니까?
나: 남편은 내년 5월 졸업 예정이고, 졸업한 후에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나를 서포트 하기 위해 한국에 직장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 역시, 장기체류 가능성을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남편도 졸업 후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라는데 포인트를 맞춤.
영사: 아이가 있습니까?"
나: 두 명 있고, 신분 상태는 남편의 dependent 로 되어 있습니다.
영사: 그러면, 남편이 1년 후에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당신은 미국에 남아서 더 공부를 할 예정입니까?
-> 여기서 내가 혼이 나갔는지 갑자기 멍해져서 잘 못 알아들어서 영사관이 통역 부름....부끄부끄.
나: 네.
영사: 애들은 지금 누구와 있음?
나: 지금은 제가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영사: 그러면 앞으로 당신이 미국에 남아서 공부할 때에 애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나: 남편의 dependent 로 되어있으니까 그 상태로 유지를...
->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대답을 더 명확히 했어야 했음. 영사관은 애들의 거취에 대해 재차 물었고, 나는 남편의 dependent 상태로 유지할 거라고 포인트 안 맞는 대답을 하고, 영사의 질문이 몇 번 더 이어지고야 남편의 디펜던트 상태니까 남편과 언제나 같이 지낼 것이라고 대답함. 영사가 원한 대답은 "남편이 졸업한 후에 애들은 남편이 데리고 한국으로 와서..." 라는 문장이었음. 다 지나고 나니,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왜 애들은 '지금' 누구와 있느냐고 물은 이유를 알거 같았음. 애들은 보통 엄마와 함께 있으려는 경향이 있고, 영사는 그걸 확인하려고 하고 싶었던 듯.
영사: 당신의 비자는 승인되었지만 확실히 할 게 있습니다. 애들은 남편의 디펜던트 이므로 남편이 졸업하여 한국으로 귀국시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귀국하여야 하고, 만약 아이들만 미국에 남길 경우 향후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길고 엄중한 설명이 이어짐)
.... 그래서, 아이들이 당신의 남편이 귀국 후에도 미국에 남아있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알겠습니까?
-> 이 말을 듣고서야, 아까 내가 뭘 잘못 대답했는지 깨달음.
나: Sure! 아이들은 반.드.시 남편과 함께 행동할...
(역시 말 짤림.)
저렇게 써놓으니까 내가 한 말이 디게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사의 경고?잔소리? 듣는 시간이 더 많았다.
비자 승인났다는 이야기를 잘못 들은게 싶을 정도로 무서운 표정과 목소리로 길게길게 말해서 잔뜩 쫄아있었다.
내가 아이들의 거취에 대해서 대답을 처음부터 잘 했더라면, 조금 더 부드럽게 마칠 수 있었는데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영사관님! 제가 이제껏 한국에서 살면서도 크게 법을 어긴 적은 없고요, 미국에서 3년 사는 동안도 미국법 잘 지키며 살았고, 앞으로도 법을 어기고 살 생각은 없습니다." 라고 소리쳐 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비자는 승인되고 영사관은 내 여권을 가져갔다.
6.15
F1 비자가 붙은 여권이 집으로 배달 되었다.
다른 사람들 할 때 들으니 5일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다음날에 바로 와서 놀랬다.
이제 Medical history form 이라던가 자잘한 서류를 또 준비해야 하지만 그래도 가장 걸렸던 게 끝나서 마음이 한결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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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와이프 생활, 남들은 팔자 좋게 보기도 하지만 결코 녹록하지 않죠.
사람마다 가장 힘든 점이 다 다른데, 저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사회인이었는데 여기서 아이들 뒷바라지, 남편 내조(...는 별로 안 했지만)
만 하려니 사회에서의 내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위기감, 불안감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힘들었는지는 생각하니 한숨 나와서 적지는 않겠습니다. 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한 감정에 힘들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직장생활 하시다가 미국에서 아무 일을 못하게 되신 분들은 비슷하게 겪는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저 같은 분들이 미국에서 일이나 공부를 시작하던가, 아니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일을 구하는, 3가지 길 중에 하나를 가게 되시더라구요.
어떤 길을 생각하시던, 용기내어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막상 이렇게 몇 년을 쉬었다 뭘 하려면 의기소침 해지고, 작아지고, 과연 될까?, 해서 뭐하나 싶은 회의감에 휩싸여서 선뜻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데, 하나하나 하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대사관 인터뷰만 해도, 나이들어 공부하면 비자 잘 안내준다는 인터넷 글,기사 보고 얼마나 떨었는데 그래도 어쨌든 되더라구요.
다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