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저는 지난 글 중 "워릭, 필름 (학부) 에세이, 인터뷰 후기" 를 올렸던 사람입니다 :-)
(닉네임이 그 때 '인터뷰망' 이었어서 그대로 했어요. 사실 망하기도 했구요.)
워릭은, 붙었지만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
대학마다 과를 다르게 지원한 제 잘못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배워보고 싶었지만,
미디어쪽에서 명성이 있고 Bsc 인 러프버러를 선택했어요.
(마음을 정하고 구글에서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건데,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 그 학교 교수님 저서가 있더라고요. 학부 수업도 하신다고 하셔서 기대 중입니다. 오래전에 구입한 책인데, 들고 갈 생각이에요. 하하)
UCAS에 전화해서 Firm 말고 Insurance 로 가겠다고 하니까,
이름이랑 정보 묻고 이거저거 보안질문까지 모두 묻고 여러번 확인한다음에 바꿔줬어요.
신기한 것이, 영국은 정말 빠르네요. 예전에 고교 유학 할 때 (12년 전) 비만 와도 인터넷이 끊기던 영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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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워릭 Firm 을 포기할 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러프버러가 가장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에 (금요일 지원, 월요일 연락)
'러프버러를 갈 거였다면, 추가적으로 에세이나 인터뷰를 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내가 더 마음 졸이지 않았을 텐데. 아까워.' 하는 생각으로 정말 누가보면 딱하다 할 정도로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분위기가 좋았고 워릭에 입학하면 무엇무엇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 담당 교수님께 말씀드렸고 그 교수님도 여러 말씀해주셔서,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동생들 (나이에 맞게 진학하는 학생들) 이나 제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냥 개인적인 욕심으로 워릭에서 필름을 공부하는 것보다 졸업 후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직장 경험도 있고 나이도 있다보니, 다시 한 번 유학을 결정한 시점부터 나는 모두가 나아가려 애쓰는 그 '명예의 길' 혹은 '스탠더드' 를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좋아하는 걸 해보자!'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현실이 완전히 결여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네요.
주변의 만류에도 워릭을 가고 싶었는데, 결정적으로 워릭 필름을 포기하게 된 건, 졸업자의 조언 때문이었습니다. 직장에서도 PR을 했었고 진학해서 다시 나아가려는 방향도 PR 쪽이다 보니, 화법이나 수사 공부를 하려고 좋은 영어 튜터들을 찾고 있던 차에 모 카페를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강사 분이 워릭 출신이라고 학력을 기재하셨고 공교롭게도 필름을 졸업하셨다고 하셔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유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국으로 유턴해서 영어강사를 하는 일이다." 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영어 강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제가 그 직업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잇기 위해 영어 강사를 선택할 거였으면 제 입장에서는 직장을 그만두지도 않았으면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을테니까요.
이 글을 굳이 남기는 이유는, 무언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여기에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계실테지만 대개 저보다 젊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입시철이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지금 고민하시는 것들이 굉장히 크게 보이겠지만 나중엔 이 정도로 크게 느껴지지는 않을거에요. 그 크기나 무게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사회에 나가면 정말 다른 문제들이 다른 고민거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와서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알게되거든요. 소위 말하는 꼰대질을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이해해요. 왜냐면 당장 저부터도 불과 며칠 전까지 대학 고민했으니까요. 그리고 대개 젊으시니까 '입신양명'의 길을 쫓는 것 역시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본인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에요 :-)
늦은 나이에 다시 유학을 결정해서 캐나다로 갔을 때 (얼마 전 귀국했어요) 가장 많이 보던 친구들은 대개 수능을 망친 혹은 부모님의 권유로 캐나다 조기 유학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자신들의 신변에 관해 가장 많이 하던 이야기는, '부모님의 직업' 이라거나 '집안의 재산' 혹은 '어느 대학에 가고 싶은 지' 에 관한 거였어요. 그 친구들이 아는 세상은 그것 뿐이니까요. 몇 없는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군대 이야기'만 하더군요. 그 친구들 중 한국인 단톡방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묻는 친구도 있었죠. 이것 역시 이해합니다. 자기들이 본 세상이 그것 뿐이거든요. 남자들에게 '군대'는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죠. 자기가 무언가를 이뤘다고 생각할 때 그 기억이 더 강렬해지는데 군대에선 그런 성취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듯 해요. 군대라는 시스템의 호오는 별개로요.
살면서 여러분의 세상이 확장될 겁니다. 그 확장되는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할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인지는 철저히 본인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대학을 치열하게 고민하시되, 거기에 함몰되어 평생을 살아가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졸업해서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취업 시즌 혹은 취업 직후 정도에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습니다. 어느 대학을 가시던, 출신 대학의 랭킹이나 사회적인 지명도를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을 포장해야되는 삶을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빛날 수 있으면 대학은 그저 여러분의 백그라운드 중에 한 줄 차지하는 정도가 될 거에요.
여유롭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솔직히, 유학갈 정도면 다들 재정적으로 풍요롭게, 넉넉하게 생활하셨을 겁니다.
사회의 치열함에 다같이 허둥지둥 살기 힘들다 이야기 하지만, 저는 만족하며 살았어요.
대학을 중퇴했지만 직업을 가졌고, 직장 생활을 만족할만큼 했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그러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서 다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욕심을 버리는 건 힘들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을 잃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 사회가 굉장히 뒤틀려 있어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채우기 바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치를 맞춰가려하고 새로운 기대값을 스스로 생산하기도 하는데요.
끊임없이 질문하려 하지말고 자기 자신이 답을 구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멈추기가 두렵다면 잠깐 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직 젊잖아요.
무언가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썼습니다. 둥근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