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용맹(?)스러워 보이는
소년(아니 꼬마?^^)은
유학생생일기에서
인기와 감동속에
연재되고 있는
가족스토리
'태극패밀리 시리즈'의
귀염둥이 주인공
'태극소년'입니다.
3개월, 잔치는 끝났다.
7월 18일. 때 아닌 폭풍우가 몰아쳐서 옷과 여행 가방이 흠뻑 젖은 채 비행기를 타고 인천을 떠나 미국에 도착하자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쾌적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림 같은 호숫가를 지나 우리가 살게 될 아파트로 오는 동안 마치 이 도시 전체가 우리의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한 착각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흥분으로 우리 가족 모두 꽤나 들떠 있었다. 아이는 새로 살게 된 아파트에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 (한국 같으면 차 타고 비싼 돈 내고 들어가야 할 만큼 큰 수영장)과 다람쥐가 수시로 뛰어다니는 넓은 정원 등에 반했고, 우리 부부는 넓은 집과 자가용, 거라지 세일을 비롯한 여러모로 편리한 사회 시스템 등에 찬탄하면서 한 동안 온 가족이 무슨 콘도에 놀러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생활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무리 작은 일에도 늘 Thank you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이는 기회만 있으면 엘리베이터 문과 현관문을 잡고 모든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 붙잡고 있다가 꼭 You're welcome 소리로 마무리를 하곤 했으며, 대형 수퍼에서는 자동문이어서 자기가 Thank you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아이: 엄마, 영어는 참 이상하다. 다 짝꿍이 있어.
나: ????
아이: Thank you, 그러면 You're welcome, 그러지. I am sorry 그러면 It's O.K 그러잖아. 또, How are you? 그러면 Fine 이러고.,
그 이후 한 동안 You're welcome과 It's O.K.를 써 먹고 싶어서 일부러 내가 자기한테 Thank you와 I am sorry 라고 해야 할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입학할 학교에 미리 답사 갔던 날, 교장 선생님이 자기 한 사람을 위해 직접 안내를 해 줄 뿐 아니라, 만나는 선생 모두가 자기에게 Hi, Hello, How are you? 등 관심을 보여주자 마치 왕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는 거의 학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
그런데, 지난 금요일.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이가 얼굴에 상처를 안고 집에 돌아온 그 날 저녁, 아이 담임선생으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왔다. 요지는, 아이가 아이들을 발로 차거나 깨무는 등 그릇된 행동을 하므로, 집에서 잘 훈육을 해 주기 바라며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면 교장에게 얘기해서 본 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앉혀 놓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아이는 자기가 참을 만큼 참았으나 (?) 친구들이 자꾸 자기를 놀리고 괴롭히는데 자기는 아직 영어가 안 되어서 설명도 못하고 그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참다, 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냥 한 대 때렸을 뿐이며 절대 깨물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아이는 그 동안 참았던 감정의 고삐를 놓아버린 듯 대성통곡을 하였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학교 친구들이 보고 싶고, 상도동 그 수퍼에서 사 먹었던 하드도 생각나고.., 사촌 형, 누나, 이층 집 동생.... 줄줄이 사탕으로 한국에 가고 싶은 이유들을 나열했다.
학기가 시작되고부터 매주 과제물과 리딩에 치여 아이와 전혀 놀아주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늘어났고, 아이는 언제부턴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으며 남편과 나, 아이 이렇게 각자 생활 속에 깊숙이 젖어들고 있었다. 그저 씩씩하고 용감무쌍하게 학교 생활 잘 하는 줄만 알았던 난 아이의 속에 감춰져 있던 그 깊은 아픔과 서러움에 너무도 당황했다.
일요일!
지도교수님께서 내가 다니는 한인 교회에 오시기로 한 날이다. 아이와 남편과 도착하길 기다리는데..
아이: 엄마, 나 오늘 선데이 스쿨 못 가겠다
나: 왜????
아이: 엄마 교수님 오시는데, 내가 옆에 있어야지. 엄마는 통역해야잖아
나: ???
아이: 그 교수님은 미국인이라며? 그럼 한국말 못할 거 잖아.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같이 있으면서 화장실도 데려가고 그래야지.
지난 월요일 교장과 선생을 만나 논리적으로 그러나 최대한 정중하게 그 메일 내용의 무례함과 아이의 상황에 대한 선생과 학교 측의 배려 부족을 인식시키고 결국 선생으로부터 진심으로 사과를 받아내었으며, 학교 측에서 우리 아이는 물론 외국학생들에게 더욱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 받았다.
그 메일을 받았던 금요일 밤 이후 꼬박 이틀을 번뇌와(아이의 상처와 그 동안 겪었을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안타까움) 분노 (선생의 무례한 이메일 내용과 태도), 덩달아 때 늦은 향수병까지 겹쳐서 시험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험을 완전히 망치고 몸도 마음도 지쳐서 터벅터벅 복도를 걷는데.., 우리 과 어드바이저가 날 부른다. 내년 봄학기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좋은 조건으로 넉넉한(?)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여섯 살에 불과하지만, 교회에 처음 온 낯선 이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이 아이와, 넘치는 애국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오늘도 열심히 미국 애들 모아놓고 합기도를 가르치는 남편이 있기에.., 비록 들뜨고 화려한 잔치는 끝났을지라도, 이 곳 역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임에 그에 따른 온갖 구질구질하고 번거로운 문제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나날이 깨달을지라도, 아직은 잔치 후의 허탈함에 빠지기는 이른 것 같다. 이제, 다시 평온한 일상의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랑스런 태극패밀리의 태극 소년을 만나다!
|
- 1067150001.gif (302.9KB)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