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당황이라는 단어가 뇌를 메꾸기 시작하면
침착이라는 단어를 함께 되새김질 해대는 일이란
더없이 복잡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무던한 연습과 반복속에서도 우린 항상
당황이라는 단어의 순간을 인생속에 되풀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닐 봉다리 넣어줄까 종이백 줄까
먹고 갈래 가져갈래
따위의 말들에 당황해 세번씩
되물어야 했던 그 상황에도
텀벙거리는 성격덕에 예쁜 옷입고 하이힐 신고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다리를 삐끗하는 나를보며
너무 크게 웃는 흑인아저씨를 째려보는 그 순간에도
처음 왔을때 버스표도 제대로 넣지 못하는 나를
답답하다는 듯 째려보는 버스기사 언니의
따가운 눈초리를 애써 외면 할때도
오랫만에 나간 쇼핑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찾아낸
싸구려 옷이 계산대에 갔더니 $20이 훌쩍 넘는
옷이라는 걸 알았을때 슬며시 놓아버리며
점원을 향한 짧은 변명과 어색한 웃음에도
열심히 준비한 페어퍼 듀가 오늘이 아닌걸 알고
슬며시 폴더안으로 밀어넣으며 은근슬쩍
눈을 굴릴때도
연주중에 하늘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왼손이 멈춰버린 순간에도
예상치 못했던 교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나를 볼때에도
지휘자가 흥분한채 내가 앉아있는 자리즈음으로
고함을 지를때도
아직도 토론에 어색하기만 한 내 얘기들을
빠른 말로 반박하는 그네들을 볼때도
까지껏 침착!
이라고 외쳐보지만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이 됩니다
어제 교수님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쫓아가진 못하지만 좋은 프로그램이
있을땐 항상 공짜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환타지 중에 바이올린의 줄이 팅 하고
풀려 버렸습니다
약간의 미소를 관중석으로 흘리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아주 살짝 갸우뚱하며 다시 튜닝을 하고
피아니스트에게 다시 한번 활짝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은 여유스러워 보였습니다.
긴장해 다리를 떨고 있는 내가 보입니다
나보다 백반배는 당황스러웠을 법 한 그인데도
경험과 훈련의 반복덕이었는지 아무렇지 안아보이는 듯
합니다
절대로 멈춰서는 안돼
당황스러운 순간에 네가 너를 포기한다면 관중도
너를 포기할수 밖에 없어
저번주 스튜디오 클래스에서 연주를 하며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음을 관중을 속이지
못하고 들켜버린 어리숙한 나에게 그가
한 말입니다
그래요
'당황'이라는 단어가 뇌와 가슴을 번갈아 가며
괴롭히는 그 순간에 내가 나를 놓아버린다면
난 이미 '포기'의 중간 즈음에 서있는 걸수도
있겠어요
나를 창피해하지 않는 내가 되겠어요
어색한 나도 우스꽝스러운 나도
욕심이 많은 날 놓지 않는 나와 내 인생에
초대된 많은 이들에겐 축복임을 잊지 않겠어요
그들이 내 초대에 항상 미소를 띈 관중이었던 것 처럼
나도 그들의 초대엔 행복한 관중이
되어주겠어요
그리고 그들이 그들을 창피해 하지 않는
아름다운 연주자가 될수 있도록 열심히
박수치겠어요
손이아프게 쳐대는 박수로 계속 그들을 커튼 콜 하겠어요
그네들이 지금 그렇게 계속 내 연주에 실망한
나를 무대 밖으로 박수와 환호로 불러내는 것처럼
나 이 작은 무대에 주인공임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차가운 시카고의 아침이 유난히 아름다운 오늘
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