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전
슈퍼맨 처럼 생긴 우리와 친했던 석사형이 한분 있었다.(형 보고 싶어요~)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거칠게 산 이형은 유학오기전에 손가락에
있던 王자 문신을 지우고 온 가늠할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이자 '나도 박사가는데 니네라고 못갈 쏘냐' 라는 '하면된다'라는 정신을 우리에게
심어준 장본인 이다.(손가락에 문신을 본인이 직접 집도했다고 해서 우린 형을 닥터 K로 불렀다)
이형과 만났던 두번째인가 세번째 모임에서 형은 자신의 과거를 꽤나 덤덤하게 털어놨었고 그의 솔직한 모습에 반해버린 우리는 석사와 학사의
장벽을 넘어 대화합의 분위기를 자주 연출했었다. 형은 욕쟁이형하고 각별한 사이였었는데 둘의 대화를 잠깐 살펴보자면
‘형 xx형 알아요?’ (둘의 활동 반경이 비슷했다)
‘그 새끼 아직도 꽁지하냐’
‘그장사는 안하고요 다른거 한다고 들었어요’
‘배운게 도둑질인데 지가 놀아봤자 거기가 거기지’
이런식 이다. 너무 전문적인 용어들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힘든 대화들이다.
형을 알고 몇주 후 형은 우리를 초대 했었다. 간단히 맥주나 먹자는 취지였는데(당연히 그렇게 안될줄 알고 있었다. 나도 이제 짬밥 먹었다)
좀 술이 오르니까 형이 갑자기 방에서 봉투 같은걸 들고 나왔다.
‘이거 죽인덴다’
(모두들 시선이 쏠리며)’혹시 히메나 선생님 나오는 거에요?’
형은 봉투에서 CD를 꺼내 티비와 컴퓨터를 연결하더니 뭔가 틀었다. 모두들 침만 삼키고 있는데 잠시후 하얀화면이 나오더니 ‘겨울연가’가
나오는 것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에 취미가 없었던 우리는 이곳에 와서도 드라마를 안보고 지냈고, 드라마 보는 사람들을 ‘시간
남아 도는 사람들’로 무시하거나 ‘향수병자’ 등등으로 일축하곤 했다. 이게 무슨 괴상한 일인가 싶어 ‘형 저희 드라마 안보는데요’ 하고
내가 말하자 이형은 ‘일단 한번 보고나 얘기해’ 하며 ‘겨울연가 1부’를 볼 것을 종용했다. 짬밥과 가방끈에 밀린 나머지 우리는 모두 겨울연가를
보기 시작했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누구의 입에서 ‘저런저런’ 소리가 나오며 그렇게 1부를 끝냈다. 잠시 후 우리는 이구동성 ‘2부 빨리
빨리’를 외치고 있었다.
3부까지 보고 집에 가는데 집에 오면서 계속 우린 준상이의 실체에 대해서 격렬한 토론을 했다(감독이 원래 비비꼬고 뻑하면 사람 죽이는 사람이
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안했을 것이다 역시 현대는 정보화 사회다.) 고성이 오고 가고 삿대질을 해가며 ‘왜 최지우는
발음이 저따구야’ ‘내가 배용준이면 거기서 안 돌아섰다’ 와 같은 연기평 까지 나오면서 우리는 급기에야 4부를 보자는 결론을 냈다. 잠시
후 우리는 청소를 안하고 간게 마음에 걸려서 다시 돌아왔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형집에서 밍기적 대다가 결국 10부까지 보고 집에 왔다.
다음주 주말, 우리는 ‘겨울연가’를 마스터했고 서로 정말 뿌듯해 하며 겨울연가는 가을동화의 2탄 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럼 ‘가을동화는
어떻게 구하지?’ 하고 있는데 석사형에게 전화가 왔다. ‘야 가을동화 구했다’ 마파람에 개눈 감추듯 우리는 형집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금-토-일로 이어지는 휴식기간에 공부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우리는 가슴 찡해지는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현상을 경험하며 ‘사랑 웃기지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되니?’ 를 외우고 서로 써먹으며 좋아했었다.(송혜교처럼 생긴 유학생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게 NASA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낳다는 말에 모두들 동의하며 이병헌과 사귄다는 말에 분해했었다)
알고 보니 석사형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친구가 CD를 제작해서 보내준다고 하는데 보고 싶은 것을 말만하라고 했다. 그
후 우리는 ‘네 멋대로 해라’를 접했는데 정말 이건 드라마라고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오 쿨하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만’ 하며
우리는 ‘네 멋대로 해라’ 에 빠져들었다. 한국 여배우들의 이름을 점점 더 알아갈수록 우리는 드라마의 플롯과 구성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급기에야 이 인간들은 옥의 티까지 잡아내기 시작했다. ‘어허 아까 문열었잖어….아까 분홍티셔츠 아니였냐?’ 하는 인간들을 보며 석사형은
우리의 학업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CD대여 전면중지를 선언하셨다.
하지만 한번 맛들인 드라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우리는 급기에야 어학연수생 들에게 선을 대어 ‘내 인생의 꽁깍지’를 구해서 보기 시작했다.
특히 왕고는 자신의 연령대에 맞다며 이 드라마를 보고 또 보기 시작했는데 급기에야 형은 박광현의 세세한 대사까지 줄줄 외워대기 시작했다.
저런 형을 보며 나머지 사람들은 ‘노친네 노망들었네’ '저러다 벽에 똥칠 하는거 아니냐' 하며 왕고의 미래에 대한 심한 우려를 나타냈고,
무엇이든지 한번 빠지면 무섭게 빠지는 왕고의 성격을 알아버린 우리는 학비와 생활비를 고국에 계신 왕고의 부모님과 연결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으나
왕고는 묵묵부답으로 시종일관했다.(당시 그는 일일드라마 아리영의 '인어아가씨'에 도전하고 있었다)
사실 옆에서 누가 드라마 틀면 당연히 시선이 그곳으로 갈 수 밖에 없는것이고 그러다보면 맥주 몇캔 순식간에 까면서 사람들 모이는 것은 순간이라
‘인어아가씨’ 상영기간이 공교롭게 미드텀과 겹친 그때는 우리는 드라마 보러 유학온게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다행히
인어아가씨가 후반부로 갈수록 김이 빠지고 모두 미드텀을 망치는 바람에 우리는 ‘드라마 보지 않기’에 대한 내부적 결의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드라마’는 이 인간들을 ‘저인간들 피해안주게 집에서 안보고 다른 집에서 보자’ 와 같은 기만적인 행동을
낳게 했고, 급기에야 그냥 지나가다 인사만 하는 어떤 여학생 집에서 모두들 우연히 모이는 엽기적인 일을 연출했다. 그 여학생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나오는 길에 우리는 서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잠시 후 너나 할 것 없이 정말 이건 아니다, 드라마 보는
것처럼 공부하면 우리도 아이비리그 가겠다, 그 동안 우리 미친 것 같다 하며 우리는 서로 자책을 하고 반성을 하며 드라마는 그렇게 그렇게
우리에게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다모’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감각적인 영상과 촌철살인의 대사가 압권이며 다모의 남자주인공은 우리와 같은 ‘유학생’
출신이란다. 기말고사가 끝난 주 우리는 다모를 빌렸다. 수많은 명장면들을 리와인드 하며 ‘캬! 좋군’하며 감상할 정도 였다. ‘역시 악역엔
아베야!’(이분 이름은 모르는데 악역전문이다. 왕초에서 일본형사 아베로 열연했었다) ‘형 우리도 유학 갔다오면 종사관 나으리 처럼 멋있어
지는 거죠?’ 하며 하루종일 다모를 봤다. 다모는 끝으로 갈수록 초반보다 시시해지는 경향이 있었으나(막판에 칼싸움은 참 아쉽다) 그래도
수작이 였다.(다모에 중독된 우리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공식 유행어로 지정, 일부러 서로 때리고 ‘아프냐? 나도 아프다?’를 집안
곳곳에서 사용하곤 했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한번 드라마 홍역을 겪어서 인지, 우리는 드라마 전염병이 돌던 시절보다는 확실히 드라마를 보지 않고 매우 경계하고 있다. 사실 드라마는
한번 보면 죽이되던 밥이되던 끝까지 봐야하는 것이고, 보다보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건 순식간이고 그러다보면 또…하는 후유증으로 우리는 요즘
드라마를 안보던 시절로 돌아갔다.
사실 옛날로 돌아가게 된 이유에는 몇주전 본 ‘천국의 계단’이라는 쉣드라마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진부한 내용(여자친구 죽이는건 이제
그만), 10년 동안 제자리 연기를 보여주고 계신 황장군님, 저놈의 혀는 어찌 늘릴 수 없는건지 생각을 들게 만드는 청순가련 최누나, 몸은
좋은데 혀는 짧은 인기만점의 권군을 보며 우리는 ‘PD 델고와 까지’ 이르렀고(양해하시라 술먹고 하는 소리다) 최초로 보던 드라마를 멈추고
농구를 하러 갔다.
농구를 하고 오는길에 오정이형이 ‘올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남자의 로망’ 이란다. 기숙사에 사는 연수생방에서 올인을 발견했는데 여자친구보다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고민했다. 몇초후
‘야! 기숙사로 안가고 어딜로 가는거야 썅’ 하는 욕쟁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꼬랑지>제글을 보면기분이 나아지신다는 분들을 위해 염치없지만 글 올립니다. 거창하게 생각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내가 누군가의 기분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내용의 이메일 보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글안올리면
뽀뽀해버릴거라는 p누나에게는 무척 죄송스럽네요ㅋㅋㅋ)
저번 룸메형들 3-1에서 'Babo'님의 리플에 저의 집에서는 한때 소동이 났었습니다. 유학생일기를 자주보던 저희는 Babo님의 여러 글들에
다신 따뜻한 리플에 '이분 누굴까?'(언어 순화 들어갑니다) 하는 궁금증을 모두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Babo'님이 리플을 다시니까 모두
좋아하더라고요.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이메일중에 정말 저혼자 보기엔 아까운 내용들이 있어서 보내신분들과 합의하에 다음번엔 Q&A모음을 한번 써보려
합니다.
식구들의 압박으로 이메일 또 적습니다. velazquez1004@hotmail.com 메신저 등록은 이제 그만~보라돌이~뚜비~나나~뽀오~
형들과
살기전 기숙사에 살 때 기분이 갑자기 우울해진다거나 꿀꿀해질때는 혼자서 맥주를 마셨시곤 했는데 가오도 안살고 심지어는 기분을 더욱 더럽게
만들고 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이것저것 해보다가 밖으로 나가 노래를 불러봤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가끔 지나가다 쳐다보는 애들도 있었는데
몇주 쌩까고 부르니 그 후로는 쳐다도 안보고 해서 R&B의 세계와 트롯의 세계를 넘나들며 나름대로 발견한 refreshment에
만족하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나와 형들과 살면서 술을 마시다가 흥이 오르면 가끔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박자를 못맞추는 오정이형 때문에 '생음악으로는 지르지말자'
라는 결론에 모두 도달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만난 닥터K형이 나에게 뭔가 물어왔다.
‘니 혹시 노래방 CD반주기 아냐?’
‘그게 뭔데요?’
‘컴퓨터에 CD를 집어누면 노래방 처럼 되는거야, 나 이거 며칠전에 친구가 보내줬거든. 니네 집 스피커 나름대로 괜찮으니 이번주말 니네집에서
해보자’
‘네 그러세요’
그주 주말 형은 이름도 없고 성도 없는 CD를 갖고 우리집에 왔다. 술을 좀 마시다가 이 CD를 틀었는데 와우~대단했다. 가수이름만 알아도
그 가수의 전곡이 검색이 되는 기능! 가사를 조금만 알아도 노래를 알 수 있는 기능! 에 우리는 열광했다. 마이크 없이 노래를 따라부르다가
답답함을 못참았던지 왕고가
‘마이크 사오자’
라는 의견을 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일찍 시작한 우리는 내친김에 마이크를 사왔고 그날 닥터K가 갈때까지 내내 노래를 불렀다. 형이 가고
나서 우리는 서로의 노래실력에 대해 칭찬을 하며 색다른 경험이 였다고 모두들 좋아했다.(우리는 유치하다)
그 후 우리는 CD를 복사해 술이 거나하게 오를 때 마다 마이크를 잡고 집을 노래방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음은 비인데 몸은 김정구인 인간들의
어설픈 몸짓과 댄스를 참다 못한 욕쟁이가 전직을 살려 약간의 기초적인 무브먼트(댄스가 아니다)를 우리에게 가르쳐 줬고 ‘몸이 아주 지랼을
떠는구나’ 와 같은 욕을 먹으며 우리는 그렇게 무아지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네이버후드와의 좋은 관계유지가 생명이다)
욕을 먹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호흡’이 맞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일과 이분의 일이 나올 때 정확한 타이밍에 반쪽을 가르지 않으면
개욕을 먹고(반쪽 댄스) 소방차노래가 나올 때 마이크를 떨어뜨리면 분위기 싸해지고(덤블링은 안하니 걱정마시라) 흐린기억속의 그대를 부를
때 옷을 거꾸로 입지 않으면 맞는 분위기로 우리는 변했다.
지들이 'god’라고 생각했던지(죄송하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god였음을 고백한다. 항상 분위기다 웬수다) 인간들은 ‘실전’을 원하기
시작했고 U-haul과 함께한 여행에서 우리는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LA의 노래방에 입성했다.
LA 코리아타운의 한 노래방. 술은 안판다는 주인 아저씨 때문에 우리는 고민했다.(보기만해도 흉칙한 우리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아저씨는 몹시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 ‘형 그냥 부르죠’(술을 먹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했다)
왕고 : ‘그러자 그냥 부르자 너무 피곤하다’
욕쟁이 : (웬일인지 온순했다. 역시 피로에는 장사없다) ‘그래 그냥 부르지 뭐’
유령 : (성을 내면서) ‘우리가 LA온 이유는 노래방 때문 아니야? 노래방 갈라고 왔으면 제대로 놀아야지 이게 뭐냐 갑빠없게! 난 술안먹고
들어갈라면 안간다’
난 경악했다. 하지만 더 무서웠던 것은 나머지 인간들이 유령의 말을 듣고 공감을 하는 것 이었다. 잠시후 욕쟁이는 레드불 마시고 찌개랑
소주랑 간단히 먹으면 어떻게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모두들 동의했다.
차안에서 꺼낸 따뜻한 팩소주와 함께 우리는 된장찌개를 ‘식사’가 아닌 ‘노래방’을 위해서 먹었다. 피곤한 몸에 따듯한 소주가 들어가니 평소보다
빨리 술이 올랐고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 덕분인지 기분도 좋아진 우리는 벌건 대낮 천사의 도시에서 불콰하게 술이 오른채 노래방에 들어 갔다.
환경이 바뀌어서 일까? 소주를 마셨음에도 불과하고 집과 같은 흥이 나지 않았다.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욕쟁이는 밖으로 나가 차안에서 마지막
남은 소주를 몰래 갖고 들어왔다.(팩소주의 위대함은 비단 야구장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발견 했다) ‘LA에 온 이유는 노래방’이라는 최면에
걸려서 였을까? 우리 모두는 안주도 없는 소주를 돌려가면서 마시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분위기는 급반전 하기 시작했다. 일과 이분의 일-어젯밤
이야기-인디언 인형처럼-호랑나비-다짐-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거치며 우리방은 섭씨 100도를 넘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고 현명한 선택-허니-찬란한
사랑-그대에게를 부를때 인간들은 사람이 아닌 댄싱머신을 변했다.
미친듯이 춤추다가 어느덧 최고 난이도인 '갈채'에 다다랐고 우리는 마지막 에네르기를 모두 불살르기로 결의했다. 우리의 마무리 노래인 ‘갈채’
뜨거운 젊음으로 청춘을 불사르자는 노래. 똥꼬부터 머리까지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도 감당하기 힘든 노래. 이날도 어김없이 ‘갈채’는 우리의
마지막 에너지를 태워버리기를 바랬고 평소보다 더 흥분한 인간들은 노래막바지에 이르자 제분을 못 참고 벽을 쥐어짜면서 더욱 흐느꼈다. 흐느낌이
통곡으로 바뀌던 마지막 후렴구, 인간들의 쥐어짬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을까?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지탱하던 문이 결국 우찌끈 하면서 부셔졌다.
‘아 조돼따……..’
벌겋게 상기된 인간들의 표정에 나타난 벙찐표정. 아직 끝나지 않은채 흘러나오고 있던 갈채. 후끈후끈한 방안의 열기와 바닥에 흩어져있던 팩소주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나오는 파마머리 아줌마와 대머리 아저씨……….
세상은 역시 우리맘대로 되는게 아니구나…
꼬랑지>저번글중 답글을 보다가 '님이 폭탄이라도 난 님의 팬'이라는 정말 멋진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 싸이월드 사진공개건에
대해서 식구들과 상의했는데 '이것 공개하면 우리중 장가갈 놈 아무도 없다'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무산됐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나저나 이메일로 사진보내신 L모양님. '나에요~^^' 하고 하지원 칼들고 있는 사진 보내면 어쩌라구요!!정말 기대했잖아요!!!!ㅋㅋㅋ
아! 그나저나 제가 1편에서 질문드린 제 진로문제는 모두 잊으셨나요? '키가 몇이냐?' '애인앴냐'? 하는 이메일도 좋지만 요즘은 '진로'에
대한 이메일을 더욱 기다리고 있답니다~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 다음주에도 모두 화이팅입니다!!!
velazquez1004@hotmail.com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