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일요일) 열흘째

우리가 사는 노스타 아파트에서는 해마다 이맘 때 annual picnic을 연다. 어제가 그 날이어서 우리 가족은 이 곳에 함께 사는 한국인 가족 두 팀과 함께 참석했다. 오전 열한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공짜로 점심도 먹고 이러저러한 놀이도 하면서 미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은 모두 차타고 놀러갔는지, 피크닉에는 노인들과 갈데없는 우리 한국 사람들뿐이었지만 그래도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경품추천 시간에 우리 가족 세 명이 모두 당첨되는 작은 기쁨도 있었다. 선물로 티셔츠, 모자, 커피잔 등을 받았다. 경품권은 번호로 되어 있었고, 우리 가족의 번호는 043, 044, 045였다. 내가 먼저 043 당첨, 잠시 후 남편이 045, 그 다음 거짓말처럼 아이의 044가 불려졌다. 번호를 부르기 직전의 침묵, 디제이의 스릴넘치는 발표.., Next winner is zero forty four. Four four!!!! 꺄아악!! 와 케인 당첨, 너 당첨되었어!! 정말 한 난리했다. 그 날 밤!

아이: 엄마, 아까 당첨된 내 번호 뭐였지?
나: 지~로 포티 포,
아이: 음...., 엄마! 십일은 일레븐, 십이는 트웰브, 근데 엄마 십삼은 뭐였지?
나: thirteen
아이: 십사는?
나: fourteen.
아이: 십오는?
나: fifteen, 십육부터는 six, seven, 여기에 teen만 붙이면 돼. sixteen, seventeen, eighteen, nineteen, 쉽지?
아이: ##@@?? 근데, 엄마. 십사는 fourteen이잖아? 그리고 sixteen, seventeen. 거럼 (아이는 아직 “그럼” 발음을 못한다). 십오는. 혹시 fiveteen 아냐?
나: ##$$@@

다음날 아침, 아이가 눈 뜨자마자 하는 말
아이: 엄마 포티 포 (forty four)가 뭔 줄 알아?
나: ?? 뭔데?
아이: 사십 사
나: 와, 짱이다.
아이: 엄마 또 물어봐 영어로
나: fifty seven
아이: 오십 칠
나: 와, 너 천재다. forty nine?
아이: 사십 구
..... 이렇게 시작된 아이와의 숫자 문답은 장~~장 한시간을 이어졌고 (아침도 건너뛴 채), 그 후 아이는 숫자를 완벽하게 마스터(?)해 버렸다. 일에서 백까지.., 이백, 삼백.....구백까지.., 허걱^^

8월 3일 일요일 태극패밀리 유학일기 작성자의 변
여자 나이 서른 일곱, 기준에 따라서는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 나이. 한참 잘 나가던 직장생활을 접고 미국에 유학을 왔습니다. 남편과 아이까지 데리고. 소위 통역사란 사람이 정작 영어권 문화 속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있었고, 때 마침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기에 단호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유학을 감행했습니다. 식구라고 해야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 이렇게 셋뿐인데.., 유학을 통해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과 떨어지겠는가? 하는 가족의 합치된 의견에 따라 온 가족이 함께 미국에 왔습니다. 남편을 설득한 논리는 두 가지 (1) 부부가 결혼을 했으면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늘 함께 하라 했는데.., 내가 불치병이라도 걸려서 중환자실에 있으면 나를 버리겠는가? 내가 당신을 버릴 수 있겠는가? 즉, 고집도 세고 성질도 더럽지만, 그래도 병든 마누라 보다는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서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해(?)하는 마누라인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 공부 싫어하는 남편은 놀고, 공부하고 싶은 나는 공부하자. 즉 각자 내키는 대로 살면 좋지 않겠소? . (2) 우리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은들 웬만한 재벌들의 재산에 근접이라도 하겠는가? 배낭매고 세계일주하는 기분으로 갑시다. 아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물려줄 재산도 없지만) 어린 나이에 다양한 가치관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결국, 숟가락 두 개로 시작해 지난 해 연말 어렵게 겨우 마련한 작은 집 한 채를 전세 놓고 그 돈 빼서 이렇게 지금 미국에 와 있습니다. 둘 다 대 가족 출신이라 조카들만 내 쪽으로 열 명, 시댁 쪽으로 열 명이지요. 양 쪽 집안 어른들, 교회의 지인들, 나와 남편의 친구 및 직장 동료들..., 대부분 우리의 결심을 무모하다 하지 않고 진심으로 장도를 축하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 분들께 어떠한 형태로든 이곳에서 우리의 삶이 건전 무쌍함을 알려 드려야 할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남편이나 나나 거의 컴맹 수준이라 아직 홈페이지를 만들지 못하여 그나마 해커스에 유학생생일기를 올리면 수십명에 달하는 우리 아이의 팬들(?)이 기뻐할 것이라는, 그리고 이렇게 틈틈이 쓴 글들을 모아 (리플까지 포함) 아이가 커서 장가가면 선물로 줘야겠다는 아주 작은, 그러나 좀 이기적일 수 있는 이유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 팬들이(가족, 친구)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양 쪽 집안의 막내 -남편은 누나 넷, 나는 오빠 넷의 막내.- 로서, 우리 아이는 유일한 외손주이자 유일한 친손주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두 사람의 행적보다도 우리 아이의 성장이- 그아이의 변화가- 더 큰 관심일 것입니다.

아이가 백일도 채 안 되었을 때, IMF 위기로 남편이 큰 타격을 입어 내가 대신 부랴부랴 취직을 하느라 아이의 모유도 중단한 채 만 삼년을 외갓집에서 키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 우리 아이에게 늘 부채감을 갖고 있었고, 이렇게 모두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랐던 아이를 엄마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또 다시 낯설고 힘든 상황에 처하게 하는 건 아닌지 사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우리가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아이를 중심으로 유학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유학생이 젊은 나이에 독신이지만, 우리 같은 유학생의 삶도 있음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다양성 차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 믿었구요.

얼마 전 우리글에 대한 악플을 보고, 다소 충격스럽고 섭섭했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아~~ 글이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모두 주관적일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 관점에 따라서는 제 글이 정말 제 애새끼 자랑에 정신 못 차리는 엄마로 비췄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비록 익명이지만, 여러분의 리플이 우리 가족, 특히 아이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학생 여러분, 또 유학생과 함께 생활하시는 유학생 가족 여러분 모두가 반드시 승리하는 삶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5] 숫자 마스터하기.

[6] 글쓴이의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