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 두 개씩 모습을 드러내던 커다란 호박들이 할로윈 데이가 다가오자 거의 모든 집 앞 마당과 계단에 서너 개씩, 많게는 열 몇 개씩 늘어져 있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할로윈에 관심이 많던 아이는 (내가 얘기해 준 적이 없으니 아마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들은 모양), 주변에서 할로윈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날이 흥분의 강도가 높아져 갔다. 할로윈 옷을 만들어 줄 시간과 능력이 없으므로, 옷을 하나 사 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마침 옆 집 데이빗 (미국에 온 다음날 사귄 미국인 친구)이 작년에 입었던 수퍼맨 옷을 빌려주었다. 덕분에 몇 십 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된 데 한껏 흡족한 난 아이를 불러놓고 옷을 보여주었다.

나: 이거 봐. 진짜 수퍼맨 옷이야. 야! 망토도 있다. 너 이거 진짜 원했던 거잖아.
아이: 싫어!
아빠: 싫은 게 어딨어, 짜샤! 멋있기만 하구만. 입어.
아이: 그래도 안 입어.
나: 왜? 이유가 뭐야?
아이: 유치해!
우리:##$$@@
아이: 내가 지금 몇 살인데 이렇게 유치한 걸 입어. childish!
나: 넌 child, 유치하다는 뜻은 어린이답다. 그러니까 네 수준에 딱 맞는 거지
아빠: 그럼, 내가 유치하리? 임마, 네가 유치한 거야 당연하지. 잔말 말고 입어!

아이는 그 옷을 걸어놓고 이틀을 안 입는다고 버티고, 난 속으로 혹시 남의 옷 얻어 입어서 자존심이라도 상한 건가 싶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옷을 사줘야 하나 잠시 갈등했으나 결국은 그 옷 값의 효용가치(?)를 생각해서 무조건 입히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사실 세살이나 많은 데이빗의 수퍼맨 옷은 우리 아이에겐 터무니없이 컸고, 팔과 다리 부분을 접어주었음에도 가슴 앞 부분의 브이자는 아이의 전체 가슴을 덥고도 남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결국 데이빗 엄마를 비롯한 같은 층 사는 아줌마들을 몰래 우리 집에 오라고 한 후 아이에게 그 옷이 얼마나 멋진지 칭찬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해 두었다. 역시, 애 가진 아줌마의 정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지 모두들 (과장되게) 한 바탕 칭찬과 감탄을 연발하자 아이는 마치 ‘팬들이 정 원한다면 할 수 없지’하는 태도로 그 옷을 입기로 했다.

할로윈 데이날은 아파트 단지에서 단체로 준비한 trick and treat 이벤트가 있고 그 후 데이빗 식구들과 할로윈 파티를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난 그 날 마감이 얼마 안 남은 페이퍼 때문에 학교에서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혹시 아이가 주눅이라도 들으면 어쩌나, 남편은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데 혹시 둘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어정쩡하게 있는 건 아닌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늦은 밤 집에 와 보니 아이 침대 머리 맡에는 초코렛과 사탕이 가득 담긴 할로윈 사탕 바구니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아이는 피로에 지쳤으나 더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남편의 얘길 들어보니 아이는 거의 아파트 단지를 휘젓고 다니면서 가장 큰 목소리로 (원래 목소리도 큰 아인데) treat or trick을 연발했고, 파티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었으며 집에 온 이후에는 그 옷 안 벗겠다고 해서 결국 아빠한테 혼이 난 후에야 옷을 벗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우리 아이는 더 이상 수퍼맨 옷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과 할로윈이 일년 후에나 있다는 사실을 대단히 (?) 유감스러워 했으며, 우린 그 옷을 못 입게 하느라 애 좀 먹었다.
한글 읽기와 받아쓰기 공부를 시작한지 한달 쯤 되었을 무렵, 단어 시험 중.
나: 4번. “공부하기 싫다”
아이: 아, 진짜 싫다! “공 부 하 기 실 다.”
나: (아이를 한 번 흘기어 본 후) 5번, 마지막 문제. "잊고 싶다"
아이: 잊 고 십 다
나: 4번, 5번 다시 생각해 봐.
아이: 왜? 맞잖아? 발음은 ‘실타’ 이렇게 하지만 쓸 때는 ‘타’가 아니라 ‘다’ 이렇게 쓰는 거잖아.
실다 - 싫다. 십다 - 싶다
이렇게 고쳐주고 틀린 단어를 다섯 번씩 쓰라고 했더니 입을 쭉 내밀고 볼멘소리로..
아이: 엄마, 근데 영어랑 우리말은 진짜 다르다.
나: 뭐가?
아이: 우리말은 받침이 있잖아? 그런데 영어는 그런 거 없어. 그냥 씨 에이 티, 이렇게 나열하면 켓, 이렇게 말이 되는데, 우리말은 복잡하게 받침이 있잖아. 그냥 ‘실다’ 이렇게 하면 안돼? 진짜 귀찮고 짜증나. 그리고 ‘십다’, ‘싶다’,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건지 진짜 헷갈려. 엄마가 미리 말 좀 해 주면 안 돼?
나: ##$$#@@

스마일 열 개 받으면 아이스크림 사 주기로 했는데, 두 문제 틀려서 다음 기회로 넘어가서 몹시 섭섭해 마지 않던 아이. 다음 날 단어 시험 때
나: 다음, "총애하다"
아이: 총 애? 엄마 아이 (ㅐ) 야, 어이 (ㅔ)야?
나: 아이 (ㅐ). 총애.
아이는 "총애"라고 쓴다.
그 다음 문제
나: "무심코 밟았습니다"
아이: 무 심 코? 엄마, 밟았습니다 할 때 바 다음에 뭐야? 리을 그리고, 뭐 있어?
나: ##$$@@ (잔머리 굴리는 게 가상해서(?)) 리을 그리고 비읍!
아이: 무 심 코 밟 았 씁 니 다.
나: 야!!! 틀렸잖아!!
아이: 왜? 맞잖아? 무 심 코, 리을 비읍이라며? 밟 았 씁 니 다. 맞잖아????????
나: $$$$$$########@@@@@@@@

[13] 유치하다니!!

[14] 영어와 한글의 차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