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저녁부터 아이가 간간이 기침을 하더니 어제 아침에는 열이 많이 올라서 결국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학교를 가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갑자기
기분이 고양된 아이는 종일 온 집안을 헤집으며 우렁찬 소리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체온을 일부러 조작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아이가 몸 상태에
비해서 너무 잘 뛰어 노는 것이 수상(?)쩍긴 했지만 그래도 “튼튼하기만 해 다오” 하는 평소 신념대로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부터 다시 열이 오르더니 저녁 식사 후에는 상체가 뜨겁고 기침이 점점 잦아졌다. 저녁을 먹으로 왔던 데이빗 엄마가 아이가 열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잽싸게 자기 집에서 (같은 층에 살고 있음) 이마에 붙이는 열 내리는 약을 가지고 왔다. 신기하게도 이마에 그 패치를 붙이자마자
아이의 열은 내렸고 지금은 쿨쿨 자고 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직전.
나: 찬우야! 너 엄마랑 아프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치? 이번만 아프고 앞으로는 아프면 안 된다, 알았어?? 약속! (새끼 손가락 걸고,
엄지 도장 찍고, 복사에.. 등등)
아이: 응.
나: 이제 그만 자. 엄마가 자장가 불러줘?
아이: 응. (잠시 후) 엄마, 근데 난 많이 아프면 좋겠어
나: 뭐시라?? 너 아프면 엄마 속상한데 그게 좋아?
아이: 아니, 그건 안 좋은데.., 아프면 좋은 것도 있어.
나: 뭐가 좋아?
아이: 학교 안 가도 되잖아. 그리고, 내가 아프면 엄마랑 아빠랑 나한테 잘해주잖아. 아~~ 아프고 싶다. 열 많이 나고, 팔이랑 다리랑
다 아프면 좋겠어. 내일도 아침에 아파서 학교 안 가면 진짜 좋겠다.
나: @@##$#$%%
잠시 후, 아이가 자는 줄 알고 슬쩍 일어서려는데.., 아이가 눈을 뜬다
아이: 엄마, 오늘은 공부 안 해?
나: 너 아직도 안 잤니? 아니, 너 먼저 재워야지 얼른 자. 거의 열시다
아이: 아냐, 가서 공부해. 엄만 어차피 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나: 무슨 그런 말이 있어?
아이: 엄만, 데이빗만 좋아하잖아? 그리고 난 싫어하구.
나: 그래? 그럼 넌 앞으로 팸 (데이빗 엄마) 아들해라. 팸이 너한테 잘해 주잖아. 먹을 것도 주고 장난감도 매일 갖다주고, 공부도 도와주고,
옷도 주고.., 그래 그냥 너 팸 아들해라..
아이: (잠시 생각 후) 아니, 됐어. 그냥 엄마 아들할래
나: 진심이야. 나도 됐어. 그냥 그 집 아들 해. 어차피 엄만 너 야단만 치고, 네가 사 달라는 것도 안 사주고,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진짜 너한테 미안하다. (이 대목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냐. 난 그래도 엄마가 좋아. 야단칠 때는 좀 안 좋은데 그래도 그냥 엄마 아들 할래..
나: 장난감 많이 주니까 팸이 더 좋잖아?
아이: 아냐, 난 그래도 엄마가 더 좋아. 엄마 사랑해. (볼에 뽀뽀)
나: 그래. 고맙다. 이젠 진짜 자자.
아이: (잠시 후) 근데 엄마?
나: 응?
아이: 엄마, 근데 나.. 있잖아.. 진짜 ‘바이에니클’ (나도 잘 모르는 장난감 이름인 것 같음) 꼭 같고 싶어. 내가 엄마 아들 할
테니까, 대신 엄마가 그거 사주면 안 돼?? 딱 한 번만. 앞으로 안 사달라 그럴께 응? 엄마.., 난 그게 진짜 꼭 갖고 싶거든..,
엄마, 플리즈?????
나:##$$%%%%%%%%@@@@@@@@@
12월
8일 월요일
한달 넘게 거의 매일 한글 받아쓰기 시험과 읽기 연습을 시킨 덕분인지, 요즘 아이는 발음이 다소 꼬일 때는 있지만 그래도 거의 받침도 틀리지
않고 글씨도 반듯하게 잘 쓰게 되었다. 어제 저녁. 예의 그 지혜 성경을 읽던 중
아이: “하나님이 미워하고 싫어하시는 것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나: 잘 읽네. 그게 뭐야?
아이: “잘난 척하는 아이 (eye), 거짓말하는 마우스 (mouth),..
나: 뭐 하는거야??
아이: 재밌잖아?? “죄 없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핸드 (hand).
나: 똑 바로 안 읽어??
아이:##$$%%
그 다음
아이: “.... 나쁜 여자가 소년들을 꾀어 갔어요." 엄마, 꾀어 가는 게 뭐야?
나: 나쁜 짓 하자고 유혹하는 거
아이: 유혹?? 그건 뭔데?
(좀 더 실감나게 설명해 주고자.. 아이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얘. 우리~~ 학교 빼 먹고, 컴퓨터 게임하러 가자? 이렇게 친구가 너한테 말했어. 그럼 넌 어떻게 해야겠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눈이 반짝거리며
아이: 그래, 좋아~!!
나: 뭐시라?? 그럴 땐 “그러면 안 돼. 싫어 난 학교 갈꺼야!” 이렇게 말해야지!!!!!
아이: 왜. 난 컴퓨터 게임이 더 좋은데?
나: 다시 한 번! “찬우야~~ 우리, 엄마 지갑에서 돈 꺼내서 장난감 사러가자” 그럼 어떻게 할래?
아이: 응! ...이 아니라, 안돼! 이렇게 말해야 해.
나: 자, 이제 꼬시다, 꾀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지?
아이: 응, 알았어. 근데.., 엄마?
나: 응?
아이: “찬우야, 우리 내일 장난감 사러 갈래?" 이렇게 말해 봐?
나: 안돼. 엄마 내일 시험이야
아이: 아니, 그냥 말 해 봐 한 번만, please mom???
나: "내일 우리 장난감 사러 갈래?“
아이: Yes, thanks 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