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업무와 집안 일 틈틈이 시간을 쪼개 십수 년 만에 다시 수학 책을 집어 들고 GRE 시험 준비하며 끙끙대던 기억,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 쓰면서 고민하던 기억, 결과를 기다리느라 답답하고 초조하던 기억, 입학허가를 받고 과연 온 가족이 무사히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던 기억, 연이은 송별회와 가족 및 지인들의 과분한 기대와 격려에 감격했던 기억들.
그런 지난한 (?) 감정의 굴곡을 거쳐 미국 땅에 도착한지 어느덧 거의 만 오 개월.

그 동안 이 곳에 정착을 했고, 한 학기를 마쳤고, 어느덧 올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교보문고 지하보도 벽에는 어느 신문사에서 붙여 놓은 “길은 먼저 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만들어 진다” (정확치는 않으나 이러한 내용의)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한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아마, 입학 허가 받은 직후 쯤 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그 글귀를 보면서 마음속 깊이 내 유학의 의미와 목적을 새삼 가슴 속에 되새기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짧은 유학생활이지만, 그 동안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작은 경험을 나누고 싶고, 이를 통해 이 곳에 새로 오실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없이 기쁘겠다.

- 생활
내 경우는 남편이 아닌 내가 공부하는 상황이었기에 일반 주택가에 정착을 했다. 학교 근처 가족 기숙사에 사는 것과는 서로 장단점이 다르겠지만 기숙사 생활은 내가 모르므로 생략하고 내가 택한 생활방식의 장점을 살펴보면, 우선, 일반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실제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고 그에 다른 생활영어도 배울 수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처럼 운이 좋을 경우는 좋은 이웃을 만나 친하게 지내면서 외롭지도 않고 필요할 때 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생활과 관련한 조언을 정리하면:
(1) 병원 응급실이나, 교통사고 등 법적으로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통역사”를 요청할 것. (영어에 자신이 없는 경우) 병원 환자 인권헌장의 1조는 통역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지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2) 오자마자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현지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것. 미국에 처음 오게 되면 현지 면허증을 따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므로 보통 국제면허증을 이용하게 되는데, 나는 뉴욕 주에서 국제면허증이 일년 간 면허증 대용으로 이용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왔음에도 그 경찰의 무지한 탓에 결국 법정까지 가서 증명하는 번거로움을 치뤘다. 무엇보다 이 곳은 permit과 license가 달라 현재 국제면허증 앞 장의 “international driving permit"은 얼핏 라이센스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가 있다. 게다가 타이틀과 서울경찰청 빼고는 모두 한글과 일어로만 되어 있어 미국에서는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임을 여기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관련기관에 꼭 민원을 제기할 작정이다. 우리처럼 만에 하나 라이센스를 따기 전에 교통사고가 날 경우는 국제면허증을 먼저 보여 주고 일년 간 유효하다는(valid) 사실과 라이센스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영문으로 작성해서 면허증과 함께 가지고 다녀도 좋을 것 같다.
(3) 교통사고 등 불미스런 법적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학교법률서비스 센터의 전화번호를 상시 휴대할 것. 법률적으로 의문이 있거나, 문제가 생길 때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업료 등에 포함되므로 특별히 돈을 내는 것도 아님). 미국 도착하자마자, 법률서비스 센터 전화번호, 이 곳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지인들 연락처 등을 영어로 정리해서 휴대하면 좋을 듯 하다.
(4) 아이가 학교를 다닐 경우는, 그 학교 교장과 잘 사귀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도 그랬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면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 때 교장과의 대화를 통하면 더 문제 해결이 쉬어진다. 이 곳은 한국처럼 교장실의 문턱이 높지 않은 것 같고, 부모로서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주눅들지 말고, 영어가 서툴더라도 논리적으로 얘기하면 대부분 통하는 곳이다.
(5) 우리 경우는 신용카드 (국제용)를 한국에서 가져 온 것으로 쓰고 있다. 또,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면 송금할 때 수수료도 아주 적고, 여러모로 편리한 것 같다.
(6) 주택가에 살 경우는 시간 있을 때 놀이터에 자주 간다. 아이 가진 엄마들과 수다도 떨 수 있고 특히 혼자 사는 노인들과 친해지면 여러모로 좋다. 특히 영어공부
(7) 교회생활. 한국인 교회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본인의 마음의 중심을 교인들이 아닌 하나님께 두고 생활한다면 실보다 득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내 경우는 전공과 직업이 모두 통역이었기에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반면 삼십 중반이 되어 새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 학문적인 기초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 또 미국식 공부방법에 익숙지 않다는 점 등 여러모로 큰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특히, 내 유학을 도와 준 교수님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과 다음 학기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첫 학기라는 밀월기간도 내게는 허용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잘.해.야.한다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심했다. 이 곳 도착 후 지금 이 순간까지 가장 어려웠던, 혹은 거의 유일한 어려움은 내 경우 바로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미국정치사상의 기초라는 과목을 호기심에 턱하니 신청해 놓고 수업을 듣는데, 정말 소리는 들리되 의미는 들리지 않는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대부분 정치학과 역사학 박사과정 학생들이 듣는 수업에 난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게다가 이제 겨우 공부를 시작한 신참이었다. 세 번 째 수업시간에 단 한 마디도 못 하고 수업을 마쳤을 때,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날 밤, 그 노 석학께(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학자였음) 이메일을 썼다. "난 미국 역사를 잘 모르는 외국학생이고, 그러기에 아주 어렵다. 그러나 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단,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도와 주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 그런 요지로.

그렇게 시작한 그 노 석학과의 관계는 매주 수업 시간 이외에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일 대 일 토론을 비롯해, 마감일 전 페이퍼 검토, 추가로 도움이 될만한 참고서적 제공, 이메일을 통한 질의응답 등 학기 내내 학문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졌을 뿐 아니라, 추수감사절 때는 가족들만이 모이는 디너에 우리 가족을 초청해 주시기도 했고, 우리 교회에 내 통역을 들으러 와 주시는 등 인간적으로도 아주 가까워지게 되었다. 오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지금의 내가 처음 학기 시작했을 때의 내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것, 그리고 큰 발전을 보였다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그 분과의 메일을 통해 했던 약속을 지켰다라는 생각에 가슴이 다 벅차올랐다.

아직 성적도 나오기 전이므로 이번 학기 제대로 공부를 잘했노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성적과 상관없이 너무도 많은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이 정도로 만족하려 한다.

처음으로 영어 페이퍼를 써야 했을 때의 그 절망감, 수업 시간에 제대로 들리지 않아 (내용이) 기가 막히던 기분, 열 살 이상이나 어린 애들(?) 이랑 수업 들으면서 그 애들의 체력과 넘치는 기력에 느꼈던 주눅감, 가족이랑 교회 일에 투자하느라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초조해 하던 기분, 성적에 대한 부담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답답함, 두고 떠나 온 과거의 영화(?)에 대한 향수병.,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것들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학생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교수의 수업에서 첫 페이퍼 B+, 그 다음 A- 그리고 마지막 A를 받아들었을 때의 희열, 학자로서나 인간으로서 너무도 우뚝 서신 노 석학을 통해 받았던 그 배려와 도움,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교회 일로 봉사하면서 느꼈던 보람, 이 곳에서의 삶이 결코 정체된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야 함을 늘 일깨워 주는 좋은 이웃이자 친구 팸 (데이빗 엄마)와의 만남.., 이런 감사와 기쁨의 조건이 더 크다.

공부와 관련한 조언
- 공부와 관련하여 교수의 도움을 당당히 요청할 것. 대화가 원만하지 않을 경우 이메일을 활용하라. 이메일을 자주 써보면 영어로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것이고, 또 영어로 생각해야 하므로 여러모로 유익하다.
- 시험 끝난 후, 페이퍼 돌려 받은 후, 교수와 만나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혹은 학기 중간 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수의 자문을 구한다.
- 보통 외국학생은 (특히 한국학생) 교수들과의 관계를 잘 맺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는 얘길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추천서를 써야 할 경우, 성적인 에이가 나왔어도 평소 그 학생과 교류가 없으므로 제대로 써줄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 학교 어드바이저에게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고 꼭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학기 중 여러 차례 주지시킨다. 내 경우도 그랬고,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에 올인.

이 밖에는 나도 배우고 있는 중이므로 다른 유학 선배님들께서 추가로 조언을 주시리라 믿고 이만 생략.

[17] 길은 앞서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만들어진다.

[17] 길은 앞서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만들어진다-공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