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18일
우리 아이의 만 7살 생일이자 온 가족이 미국에 온 지 만 육 개월이 되는 날. 그 동안 눈부시지만 덥지 않은 여름과 짧은 가을을 보냈고 지금은 춥고도 눈이 무지 많이 오는 겨울을 나고 있다. 난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학기를 시작했으며, 남편은 나 없이도 수퍼, 도서관, 주유소 등 자유롭게 다니면서 누구와도 거침없이(?) 영어로 말 할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발음보다는 바디 랭귀지를 통해 더 이해를 빨리 하는 것으로 보아 담대한 마음과 영어실력의 향상이 그다지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육 개월 사이에 영어로 말하는 것이 우리말 보다 더 편한 상태가 되었고 발음과 억양, 제스처까지 우리 가족 중 가장 미국문화와 언어에 쉽고 빠르게 동화되었다. 얼마 전에는 앞으로 영어로만 말하고 싶다고 해서, 집중적인 세뇌교육과 응분의 체벌(?)이 가해지기도 했다.

매일 저녁 아이와 함께 한글 책과 영어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하루는 마틴루터킹 데이가 얼마 남지 않아 그의 자서전을 읽어 주고 있었다..
아이: “버스 안은 승객들로 만원이어서 더 이상..”, (읽기를 멈추고) 엄마 만원이 뭐야?
나: 사람이 가득 찼다는 뜻. 버스 안이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뜻.
아이: 차비가 만원이라는 뜻 아냐, 혹시?
나: 아니, 차비는 십 센트. 여기 써 있잖아. 그리고 만원은 우리나라 돈이고 여긴 미국인데?
아이: ##$$%

아이에게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킹 박사의 업적 등 한참 열심히 설명해 주면서..,
나: ~~~ 그래서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 박사를 존경하는거야.
아이: 엄마, 근데 나 이 사람 싫어
나: 왜? 훌륭하잖아?
아이: 훌륭하긴 한데, 매일 같은 말만 해
나: 뭐라고?
아이:"I HAVE A DREAM!", "I HAVE A DREAM1", 낮에 학교에서도 그러고 집에서도..
나:$$%%###

어린이용 그림 영어 성경 읽던 중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아이: 근데, 엄마. 엄마 아빠가 나보다 먼저 죽지?
나: 그렇겠지. 엄마 아빠 죽고 난 후에도 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네 애가 크고 나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서 죽어야지
아이: 그럼, 엄마 아빤 죽어서 천국에 가 있는거지? 나랑 만나려구
나: (그 동안 주입식 교육의 성과에 흡족해 하며), 아이쿠. 잘도 아네. 그럼.. 엄마 아빠가 먼저 죽어도 천국에서 너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만나는거야
아이: (잠시 침묵하더니). 근데, 엄마. 내가 죽으면 어떤 얼굴이 돼?
나: 응?
아이: (갑자기 대성통곡을 한다).
나: 왜 울어?
아이: 그게 아니라, 내가 할아버지가 돼서 죽으면, 천당에 갔을 때 엄마 아빠가 나 못 알아보면 어떻게? 내가 얼굴이 이렇게 쭈그러들어서 (양 손으로 얼굴을 찌그러뜨리면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래서 엄마 아빠를 못 찾으면 어떻게?
나: @@##$?????
약 한달 전 쯤 (2월 말)

어느 날 저녁거리를 찾느라 냉장고를 뒤지는데 냉동실에 넣어 놓은 쌀떡이 보였다. 그런데 떡을 보니 사 온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군데군데 곰팡이가 보이는 것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모양이다. 동양인 식료품점은 냉동식품에 유통기한을 표기 안하는 제품들을 팔곤 하는데 무심코 사다 보면 이런 낭패를 보게 된다. (주의 요망!). 쓰레기통을 열고 버리려다 문득,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섬주섬 곰팡이가 있는 부분은 버리고 멀쩡해 보이는 떡들만 추려서 떡국을 끓였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혀를 끌끌 차더니, 그래도 나의 그 변신(?)이 기특하다며 죽어도 같이 먹고 같이 죽자며 테이블을 차렸다. 잠시 후 나타난 아이.

아이: 와, 엄마! 오늘 떡꾹 끓이는 날이야?
나: 넌 오늘 마카로니 해 줄께. 너 먹고 싶다고 했잖아.
아이: 내가 언제?
나: 며칠 전에 그랬잖아.
아이: 싫어. 나도 떡꾹 먹을래. 내가 떡꾹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 (아이를 째려보며) 그래도 오늘은 그냥 마카로니 먹어. 떡꾹도 조금 밖에 안 돼서 엄마 아빠 먹을 거 밖에 없어
아이: 무슨 엄마가 그래? 엄만 아빠가 더 좋아? 그리고 난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음식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나: #$$%%%

아빠: 야, 임마! 엄마가 주는 대로 먹어. 뭐 말이 그리 많아!!!
(이렇게 상황은 정리되고 아이는 입이 삐죽 나온 채 마카로니를 먹으며, 우리가 먹고 있는 떡꾹을 흘끔거린다)

우리 부부는 속으로 찝찝한 마음을 참으며 억지로 떡꾹을 먹는데 아이 왈
아이: 엄마, 아빠. 떡꾹 맛있어?
우리: 아니, 별로.
아이: 엄마, 나 한 숟갈만 줘.
나: 안 돼.
아이: (눈물을 그렁거리며). 나도 떡꾹 먹고 싶다..

[19] 우리가 죽으면...

[20] 떡꾹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