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석사 2학기를 마치고 시작한 박사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꽤 큰 부담을 느꼈는지 학기 초에는 아이에게 예전처럼 시간적, 정서적 배려를
해 주지 못했다. 가사일에, 교회일에 공부에 늘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점차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초조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문득,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조차 아까워 하는 내 황량한 마음을 발견하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한달 전쯤부터 저녁 식사 후 식탁테이블에서 가정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다 함께 찬송, 남편은 성경봉독, 나는 영어로 아이에게 어린이용
성경읽어주기, 그 다음은 아이가 한국어로 된 어린이용 성경낭독, 그리고 아이의 대표 기도로 예배를 마무리한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예배 후 함께 하는 카드 게임이다. 나와 남편은 아이의 기도 전에 필요한 기도제목을 알려준다. 그럼 아이가 그 기도요청 내용을 쭈욱 훑어보고
기도를 해 준다. 굴러온 돌이 박한 돌을 빼낸다는 말처럼, 이곳에서 1년 조금 넘게 여기서 배운 영어는 아이가 만 6년 이상을 갈고 닦은
한국어의 기초를 마구 흔들어 놓아서 지금은 우리말이 다소 어눌해 졌다. 그러나 그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어법도 맞지 않고, 때로 횡설수설에
가까운 아이의 기도가 거의 매일 밤 우리 가족 세 사람 모두를 눈물짓게 만든다.예배가 연일 이어지면서 나는 아이의 기도와 평소 내 기도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기도가 늘 무언가를 요구하고 채워주시길 바라는 내용일변도라면, 우리 아이의 기도는 대충 다음과 같다;
"오늘은 엄마 아빠가 많이 힘들고 지치는데도 이렇게 좋은 예배를 드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남편과 내가 다툰
후 서로 마음이 상해서 예배를 건너 뛰려 한 날 아이의 강요로(?) 예배를 드린 날
"오늘 사과 picking을 다녀왔습니다. 아빠는 허리도 아픈데 힘들게 사과를 따고, 엄마는 무겁게 사과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친구랑 그냥 놀기만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 이 대목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내일은 엄마가 시험을 보는 날입니다.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엄마한테 아까 낮에 말 안들어서 엄마가 속상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오늘은 가장 멋진 할로윈 데이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저랑 같이 treat or trick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두 세 문장의 짧은 기도지만, 아이는 늘 감사하거나 죄송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의 기도는 늘 무언가를 바라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평소에 그렇게 개구장이인 녀석이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짧은 기도를 할 때면 늘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오늘 모처럼 해커스에 들어와서
이러저러한 글들을 읽다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글들과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한 글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우리들 대부분 한 때는 평범한
우리 아이처럼 다 그렇게 착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어린아이였었는데....